빈 무덤―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문충성(1938∼ )
댓잎 바람 소리
봉분들
빈 무덤들
만들었네 시신들
찾지 못해
시뻘겋게 미쳐나
제주 하늘 떠돌다
시커멓게
멍든
혼들아!
50년도 더 지나
고작
눈물 무덤들
지어냈으니
와서
보아라!
무자년 그 처참한 삶과 죽음들
나라는 어디에 있지?
백의민족은?
우리가 창조해낸
삶, 아!
그 빈 무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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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옮긴 시집 ‘허물어진 집’은 금빛 햇살 물고 한가로이 파도치는 아름다운 제주 바다, 수심(水深) 깊이에서 자욱이 피어오르는 제주도 사람의 처연한 역사로 독자 가슴을 벤다. ‘제주어(제주 토박이말)가 사라져간다./제주도인도 사라져간다./사라지기 전에 이 언어로/제주 4.3사태 등에 대한 몇 편의 시를 썼다.’(‘시인의 말’에서) 사람들아, ‘와서/보아라!’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에 서린 애통함과 의분(義憤)이 언제까지고 가슴을 쑤시는 ‘무자년 그 처참한 삶과 죽음들’. 4·3사태 유적지 ‘무등이왓’, 정확히는 ‘무등이왓 터’에서 새삼 무너지는 시인의 억장이다.
‘왓’은 ‘밭’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다. ‘무등이왓’에 대한 사진과 글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 있다. 1948년 11월에 ‘시뻘겋게 미쳐나’, 불을 내서 주민을 몰살시키고 폐촌을 만들었다지. ‘댓잎 바람 소리/봉분들/빈 무덤들/만들었네 시신들/찾지 못해’, 인터넷 사진 속의 돌담을 뒤덮은 무성한 대나무 숲, 솨솨 흔들리는 소리 들리는 듯하다. ‘행복한사람’이라는 블로거가 글을 맺은 말이 가슴에 남는다. ‘먹고살기 힘들다고/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고/잊어버리지 않기를/소홀히 하지 않기를/나는 제주인이니까!’
거칠게 선동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우러나 움직이게 하는 선생의 제주 시편들. 무너지는 억장에서 나오는 여리고 맑은 시어가 가슴에 촉촉이 젖어든다. 가령 ‘할로산과 흐르지 않는 남수각 시내/개떡 같은 초가 마을이/살았어요 검둥개와 조랑말/복숭게낭/돔박낭과 돔박생이/밥주리와 독수리/머쿠슬낭과 머쿠슬생이’(시 ‘회귀·回歸’에서), 언제까지고 나직나직 이어질 듯한 이 서럽고 아름다운 옛이야기 가락. 선생의 시집들을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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