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일(9월 28일)이 임박하면서 문을 닫는 유명 한정식집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언론도 관련 보도에 열을 올린다. 이들은 1인당 3만 원 이상의 식사를 대접하면 과태료를 물리도록 한 이 법 시행령이 그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어떤 음식점의 경우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 유력 정치인, 고위 기업인의 단골이었다는 사실도 전한다. 60년 전통의 ‘유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정식집의 퇴장이 한식 문화 발전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한식집 사장은 “1인당 저녁 7만 원가량이 너무 비싸다고 하지만, 여기엔 고급 한정식과 함께 3∼4시간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는 대가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4개월 전 문을 닫은 ‘행복한 마음’(서울 종로구 통의동)도 김영란법의 희생물이다. 이 집은 DJ정부 때 개업한 남도 음식 전문 한정식집이었다. 옥호가 ‘우아’한데다 음식도 정갈하고 맛깔나 각계 거물급 미식가들이 즐겨 찾던 명가(名家)다. 광주광역시의 ‘송죽헌’에서 음식을 배운 김보옥(여·59) 사장이 자신의 주말농장에서 키운 야채류로 직접 조리를 해 마니아층도 두꺼웠다. 홍어회와 제육, 묵은김치가 어우러진 삼합과 삼색 전, 갈비찜, 간재미 무침, 굴비 장아찌 등 30여 가지의 찬과 요리가 늘 식탁에 올랐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15년이나 묵힌 7가지 젓갈도 주메뉴다. 이회창 전 국무총리,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전·현직 장관, 모그룹 오너 등이 주 고객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참모들과 ‘환송연’을 가졌던 음식점도 바로 여기다.
며칠 전, 근황이 궁금했던 김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김영란법이 여러 사람 죽인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단가를 낮춰 영업을 계속해볼 생각도 해봤지만 그 가격으론 종전의 질(質)을 절대 유지할 수 없어 폐업하게 됐다”고도 했다. 동탄 신도시 삼성 반도체공장 앞에 한 그릇에 7000원짜리 추어탕 집을 열었는데 인근에 올 일 있으면 꼭 들러 맛 좀 보고 가라고도 했다. 그 순간 ‘행복한 마음’에서 식사할 때마다 “치악산에서 구입한 자연산 송이버섯이에요” “가야산 물로 빚은 막걸리예요” 하며 손님에게 정성을 다했던 그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가 남도식 한정식에 이어 추어탕으로도 음식 명인(名人)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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