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쓰기 1. 수필의 구성 요소 수필은 형식이 없다고들 말한다. 아니 '형식이 없는 것이 수필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형식이 없는 그 형식이 수필의 형식이라면 어려운 말이 될까? 일정한 틀이나 요건만 갖추면 그것이 좋고 나쁜 차이는 있을지언정 형식면에서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제반 문학장르들인데 비해 수필에선 그런 형식을 주장하지 않다보니 그러한 장르로 잘 구분이 되지 않는 모든 부류를 수필류에 포함 시키는 것 같아 준 문학장르처럼 느껴져 가슴이 아프다. 흔히 수필을 쓸 때 우리는 4가지의 구성요소를 말한다. 바로 주제(主題)와 제재(題材)와 구성(構成)과 표현(表現/描寫)이다. 즉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나타 내려는 핵심적인 사상이나 중심적 의미-主題, 그러한 사상이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선택하는 소재-題材, 이런 선택된 재료들을 치밀하게 얽어짜서 조화를 이루고 의미화 할 수 있게 하는 작업-構成,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생명력 있게 작품으로 잘 드러날 수 있게 하는 적합하고 효과적인 표현-描寫, 이러한 일련의 유기적 관련의 작업이 전혀 꾸밈 없이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뤄져 한 편의 글로 완성 되었을 때 우린 좋은 글이라 말하게 되는 것이다. 2. 참신한 주제와 소재 찾기 1) 좋은 수필의 첫째 요건은 무엇보다도 문장이 솔직하고 소박하여 진솔함이 있어야 한다. 그저 아름다운 말로 꾸미려만 하다보면 진실과 멀어지기 마련이고 독자의 가슴을 파고들지 못하는 허약한 내용, 겉치례로 넘치는 문장이 되어 진솔성을 저버리게 된다. 좋은 글, 좋은 수필이란 무엇보다도 독자를 감동 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글이 되는 표현 곧 문장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고, 그 문장은 작자의 품격이 스며난 것으로서 아주 잘 익은 술처럼 은은한 향기로 작자의 사상과 감정을 넘쳐나게 하는 것이다. 2)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참신한 주제와 소재 찾기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대개의 작가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수필은 자기의 주장을 아주 강하게 말하는 것도, 또 너무 자세히 설명하는 것도, 그렇다고 자기 독백처럼 되어서도 아니되는 문학이다. 해서 특출하게 한다고 해서 너무 기발하거나 괴벽스러운 것도 참신성을 잃기는 마찬가지고,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해도 그렇다. 결국 참신한 주제와 소재란 다른 사람은 겪지 못하는 나만의 독특한 체험일 것이고, 그것이 충격적으로 자신을 지배하는 것, 남보다 더 많은 생각과 주의 깊은 관찰 속에서 자기만의 것을 찾아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리라. 다시말해서 동일한 사건도 자기만의 눈, 자기만의 생각, 특유한 자기만의 체험이 될 수 있을 때 참신성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며, 이러한 참신성이야말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맛이요 멋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필의 주제는 설득하거나 강요하는 식이 아니라 은근하게 시사만 해 주어서 독자가 자기 수준에서 깨닫게 해주며, 적당히 여백의 여유를 주어야 여운으로 오래 남게 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3. 수필문학의 특성 수필은 문학으로써 5가지의 특성을 갖는다고 했다 (이철호-수필 창작의 이론과 실기). 1) 무형식성, 2) 산문성, 3) 자기 고백성, 4) 광범성, 5) 창조성과 문학성이다. 무형식 문학, 산문 문학, 자기 고백의 문학이라고 하는데서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광범성의 면에서 수필은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형식성과 구분된다. 어떠한 형식이나 제약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특성이야말로 수필문학이 가진 매력일 수 있으리라. 그래서 어문학회의 '국어학 개론'에선 '국문학 산문(散文) 중에서 소설, 희곡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수필이다'라고까지 정의되고 있다. 때문에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 감상문, 칼럼, 전기, 자서전, 권두언, 연설문까지 수필 속에 포함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수필가들에게 있어서의 수필은 내용, 구성, 문체, 논리성, 문학성, 작품성 등 예술적 가치가 충분한 작품을 말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창조성과 문학성 면에서 수필은 창조성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수필이 자기 체험을 기술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인데 수필은 그런 사실 기록과는 다르다. 마치 물을 얼려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형상의 얼음조각으로 만드는 것과도 같다 할까. 형질은 같지만 아주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감동을 창출하는 것이 바로 수필이기 때문이다. 과자 공장에서 재료가 콘베어 라인을 통해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여러 과정을 거쳐 얼마 후엔 맛좋고 먹고싶은 마음이 우러나오게 하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과자가 되어 나오듯 작품도 작가라는 통과관을 거치는 동안 작은 체험이 여러가지의 감동을 일으키는 크고 작은 여러가지 새로운 형태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일찌기 윤오영님은 수필과 잡문을 감나무와 고욤나무로 비교하고 수필은 감나무에 열린 감이 아주 탐스럽게 잘 커가서 찬서리를 맞으며 붉게 물들었다가 껍질이 벗기워져 다시 찬서리 속에서 말리워 진 것에 시설(枾雪)이 앉게 되는데 그것이 참 맛나는 곶감으로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곶감이라고 했다. 곧 수필의 창조성 내지 문학성은 그런 면에서 다른 문학 장르와는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좋은 수필 쓰기. 1) 생각 맑히기 노나라엔 나무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재경이란 목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거문고를 만들었는데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궁궐에까지 소문이 전해져 임금께서 부르시니 그는 거문고를 가지고 궁으로 들어갔는데 임금은 "그대가 만든 이 거문고는 참으로 훌륭하구나. 그대는 도대체 어떤 기술로 이처럼 놀라운 악기를 만들었는고?" 하시는 것이었다. 재경은 "임금님, 저는 평범한 목수일 뿐입니다. 특별한 기술을 갖고있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악기를 만들기 전에 먼저 제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합니다. 그리고 악기에 대해 깊이깊이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한 사흘쯤 지나면 그 악기를 만들어 상을 받는다거나 벼슬을 얻는다거나 하는 것 같은 생각을 잊게 됩니다. 다시 닷새쯤 보내고 나면 세상 사람들이 비난을 하거나 칭찬을 할 것들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됩니다. 이레가 되면 제 마음엔 고요로움만 남습니다. 아무것도 제 마음을 어지럽히거나 흔드는 게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악기 만드는 일만 생각 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저는 산으로 올라갑니다. 악기를 만들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로부터 악기를 만들게 되는데 이 악기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먼저 잘 써볼려는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그런 욕심은 짙은 화장을 한 얼굴처럼 진솔함을 잃게 마련이다. 두번째는 칭찬이건 비난이건 남을 의식치 않는 것이다. 내 글을 읽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위신과 체면이 앞서다 보면 역시 수필의 생명인 진솔함을 잃고 마는 것이다. 세번째는 작품 속에 내가 먼저 빠져들 수 있어야 한다. 나도 감동 시키지 못하는 글이 어찌 남을 감동 시킬 수 있겠는가. 네번째는 쓰는 글이 아니라 씌여지는 글, 물 흐르듯 막힘없이 생각이 흘러 나오고 그 생각이 글로 변한 것이어야 한다. 생각은 오래 하고, 쓰기는 단번에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 고 잘 익은 생각이 질서롭게 표현되어 읽는 이도 부담없이 작품 속으로 들어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은 곧 사람'이란 말을 한다. 사람이 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곧 글이 되는 것이니 거기에 어찌 가식이 있고 위선이 있고, 허구가 있을 수 있으랴. 수필이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점이니 사람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선인들의 말씀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반야심경'에는 '심무괘애 무유공포'(心無 無有恐布)란 말이 있는데 곧 '마음 속에 아무런 얽메임도 거리낌도 없으면 두려움도 걱정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곧 글이요, 글이 곧 사람이다라는 말과 일맥 상통하는 말이 될 것 같다. 좋은 글을 쓰는 첫번째는 진솔한 쓰기를 위하여 생각 맑히기가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2) 생각 비우기 수필에선 생각은 많이 하고 쓰기는 쉽게 쓰라고 했는데 많은 생각을 한 중에서 글로 씌어지는 것은 꼭 남아야 할 것만 남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힘들게 얻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을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을에 농부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똑같이 농사를 짓는데 한 농부는 많은 소득을 낼 욕심으로 벼를 아주 빽빽하게 심었고, 다른 농부는 듬성듬성 벼를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듬성듬성 심은 논의 벼는 씩씩하게 새끼를 쳐가며 큰 포기를 이루어 잘도 자라는데 빽빽하게 심은 논의 벼는 이상하게도 자꾸 죽어가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벼를 너무 촘촘히 심었기 때문에 벼 포기가 커지면서 벼와 벼가 서로 닿아 썩어버리는 이른바 문고병이란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결국 지나친 욕심이 일년 농사를 망치게 한 것이다.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것도 이런 불필요한 욕심과 고집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리 멋진 문장이라도 거기에 꼭 필요한 것인지, 그 문장을 빼 버려도 글이 된다면 그 문장은 사실 필요 없는 문장일 수 있다. 곧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생각의 양(量)이 아니라 깊이있는 생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잡다한 생각들이 정연하게 정리되고 꼭 필요한 것으로 농축되어 정갈한 문장, 함축되고 정제된 문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생각을 비우는 작업은 바로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멋진 글을 쓰고자 하면 오히려 저속한 글이 되기 마련이고, 자기의 기분에 따라 제 멋에 도취하는 글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고 본다. 3) 수필은 속을 비워내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곳에 간 적이 있다. 흙을 반죽하여 형태를 만드는데 속을 비우고 겉만으로 형태를 유지하는 작업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속이 차있어도 겉모양은 마찬가지겠지만 속이 비어있지 않으면 완성되어도 아무것도 담을 수 없게 되어 그릇이랄 수 없게 되는 것처럼 글을 쓰는 일도 '구성'이라는 모양 갖추기를 제대로 해낼때 쓸모있는 그릇처럼 읽는 이에게 무언가 담아줄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친절하고 장황한 설명은 읽는 이의 생각샘을 막아버리는 역할을 하여 작품의 맛과 멋을 맛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독자가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겨 주어야 독자도 흥미롭게 읽어주는 글이 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함축된 간결한 문장으로 독자의 생각그릇에 여운으로, 공감으로, 즐거움으로 담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4) 수필은 소리없이 피는 꽃처럼 씌여진다. 꽃이 피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예민하고 청각이 발달 되었다 해도 꽃이 피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 무언가 움직임이 있으면 소리가 있을 것이다. 다만 듣지를 못했을 뿐이다. 수필은 소리없이 피는 꽃과도 같다고 생각된다. 아름다움은 가슴으로 온다.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눈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낌은 가슴으로부터 솟아난다. 그래서 수필이 강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 수필 고유의 내음과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수필은 언제 피었는지 조차 모르게 소리없이 핀 꽃을 보고 느끼는 놀라움처럼 가슴속으로 감동이 시나브로 스며드는 글이다. 해서 눈으로도 말을 하고, 생각으로도 의견을 나누고, 소리내어 말하지 않아도 표정만 보고도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수필은 그렇게 잔잔하게 가슴을 울리고, 가슴으로 스며드는 글이기 때문에 소리없이 피는 꽃에 비유한다. 교훈도 비판도 지극히 낮은 목소리롤 말하여 가슴을 열어야만 그 가슴으로만 들을 수 있는 글 그게 수필이다. 5) 좋은 수필 글을 쓰는 작가라면 해박하고 광범한 지식, 심오한 사상, 예술적 감각, 작가로서의 눈, 예리한 직관력과 탁월한 관찰력, 풍부하고 뛰어난 상상력 등을 소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건들만 충족된다 해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수필은 공감(共感)의 문학이다. 허구가 아닌 실제 나의 체험, 곧 나의 이야기가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것과도 같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수필을 쓰는 것이니 무엇보다 진솔함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고, 두번째는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문장력이 받침되어 주어야 한다. 독자가 쉽게 수필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글, 그리고 끝까지 읽어가며 작가의 체험이 자기의 체험인 것으로 공감하며, 읽고난 후엔 작자가 의도한 감동이 길게 여운으로 남아 있는 글, 그런 수필이 좋은 수필이 아닐까싶다. 수필은 품격(品格)이 있는 글이어야 한다. 품위있는 글, 지나치게 어렵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은, 평범한 듯 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글이어야 한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이다. 수필은 힘들게 써서 쉽게 읽혀져야 좋은 수필이라고 한다. 하지만 윤모촌님의 '수필문학의 이해'에서 '글을 쓰는 자세'를 옮겨 적는다. 한 편의 수필을 활자화 시켜 독자 앞에 내놓기 전에 참으로 '문인'이란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나'인가 항상 우려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문인'의 칭호를 얻기 위해 관문을 향해 노력을 한다. 그러나 문인 칭호는 관문을 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칭호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칭호가 아니라 실력이고 인정을 받을 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자세 여하에 따라 갈림길이 결정된다. 수필은 쓰기 쉬운 글이라는 인식에서, 아무나 써서 책으로 내기에 적당한 문필로 알기 쉬우나 쉽게 쓸 수 없는 글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수필은 누구에게나 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서둘러 발표하려는 허욕에 부채질을 한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문장을 가장 가볍게 여기면서 찍어낸다. 이리하여 수필에 시비가 따르고 격하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수필에는 자율 타율의 비평이 높게 요구되는 글이다. 관문을 통과해 놓고 보자는 생각이 앞서는 한, 수필을 쓰는 길은 더 멀어진다. 활자로 되어나온 작품을 놓고 개작(改作)을 할 만큼의 채찍이 필요한 글이 수필이다. |
출처 : 이영희 문학세계
글쓴이 : 하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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