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감상

<2> 어느 새벽 처음으로 / 조은

시온백향목 2017. 5. 16. 19:17

어느 새벽 처음으로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불안하게 눈을 뜨던

여느 때와 달랐다

내 마음이 어둠 속에

죽순처럼 솟아 있었다


머리맡엔 종이와 펜

지난밤 먹으려다 잊은 맑은 미역국

어둠을 더듬느라

지문 남긴 안경과

다시는 안 입을 것처럼

개켜 놓은 옷

방전된 전화기


내 방으로

밀려온 그림자

밖 그림자

한 방향을 가리켰다


밤새 눌려 있던

머리카락이 부풀고

까슬까슬하던 혀가 촉촉했다


흰 종이에다

떨며 썼다

어느 새벽 처음으로

 

 

-조은(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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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깨끗한 첫새벽!


화자는 많청춘이 그렇듯 현재가 평안치 않고 따라서 미래는 불안하기만 했던 듯하다. 그 어지러웠던 마음이 어둠 속에 죽순처럼 솟았다.


우리는 지금 정갈한 탄생의 순간을 보고 있다. 그 순간의 맑은 전율을 잊지 않는 한, 죽순의 그 마음 곧게 자라나 청청한 대숲 이루리라.

 

초심의 아름다움, 초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다. 하는 일이 지지부진하고 기쁨이 없다면, 그 일을 시작할 때의 처음 마음, 처음 자세를 되새겨보자. 어린 아기로 돌아가, 서툴더라도 즐겁게 한 걸음 한걸음, 새로 디뎌보자.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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