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재단에 쓰여 때를 타고 말았지만 용을 뜻하는 미르란 말이 한글로 처음 쓰인 곳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미리내 시나브로 쌈지 같은 다른 아름다운 우리말도 나온다. 한글 발음 설명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7월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견됐다.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에게 해례본을 팔려는 사람이 나타나 그가 구입비 8000원에 중개비 1000원을 주고 샀다고 전한다. 당시 1000원은 서울의 기와집 한 채 값이었다.
2008년 7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경북 상주의 고서적 수집가 배익기 씨가 “집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왔다”고 쓴 글이 게시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문화재청 전문가가 현장을 방문해 확인했더니 진품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배 씨는 골동품 수집가 조영훈 씨에 의해 절도 혐의로 고소됐다. 배 씨는 2014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소유권은 2011년 민사소송에서 이긴 조 씨에게 있었다. 조 씨는 수중에 없는 해례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10일 배 씨는 9년 만에 상주본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2015년 배 씨 집에 난 불로 책 아랫부분이 일부 탄 모습이었다. 그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상주본을 국보로 등재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무소속 출마했다. 간송본은 국보 70호로 등재돼 있다. 상주본은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어졌지만 간송본에는 없는 연구자의 주석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 씨는 국회의원 후보자 재산 등록을 하면서 상주본의 가치를 1조 원으로 등록하려 했으나 선거관리위원회가 거부했다. 배 씨는 2년 전 1000억 원을 받고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소유권이 국가에 있는데 돈 주고 구입할 이유가 없다”며 “배 씨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해 소유권을 가져가면 그때 가서 매매든 뭐든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소유권은 차치하고 귀중한 문화재를 간수도 못 하면서 꽉 움켜쥔 채 1000억 원, 1조 원을 부르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설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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