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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92]공중증(恐中症)/박용채 논설위원/경향신문/2017.02.12

시온백향목 2017. 3. 8. 16:17

 1년반쯤 전 일본의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에는 도요타가 하청기업이 되는 날이라는 이색 기사가 실렸다. 세계 제1의 자동차 회사이자 초일류기업으로 분류되는 도요타가 하도급으로 전락한다니, 이 무슨 뜬금없는 얘기인가. 잡지는 연결로 상징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도요타조차도 정보유출을 우려해 기술을 공유하지 못하면서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소니, 파나소닉 등이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망가진 것을 목도한 것을 감안하면 뼈아픈 지적이기도 했다.


 글로벌 산업계는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미국·일본·독일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무역협회가 유엔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세계 수출품목 5579개 중 31.6%1762개 품목에서 중국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2005년 이후 벌써 11년째 독주다. 1위 품목수도 전년에 비해 128개나 늘었다. 차이나 쇼크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쯤되면 글로벌 산업계에 공중증(恐中症) 경보가 울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한국의 1위 품목은 68개로 14위 수준이다. 3년째 큰 변화가 없어 선방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지만 중국의 급속한 영토확장을 감안하면 상대적 추락이라고 보는 게 마땅할 것이다. 더구나 1위 품목 중 절반 이상인 40개 품목에서 중국, 미국, 독일, 일본의 추격을 받고 있다. 일본을 뒤쫓으며 기술력을 키운 뒤 중국 시장을 발판 삼아 산업을 키워온 것을 떠올리면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는 벼랑 끝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일본은 한때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졌다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저력은 여전하다. 일본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온리 원기업들이 즐비하다. 첨단 핵심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력산업은 성장을 멈췄고, 미래산업은 발굴·육성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꺼내들었지만 겉돌기만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골든타임이 사고나 사건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게다. 산업 골든타임이 재깍재깍 흘러가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된 경보를 울려주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