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9일)은 세계 화장실의 날이다. 2001년 만들어져, 2013년부터 유엔 공식 기념일이 됐다. 현재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약 25억 인구가 위생적인 화장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으며, 10억 인구에게는 화장실 자체가 없다. 화장실은 인간의 건강·존엄·안전 문제와 직결돼 있다. 해마다 34만 명 이상의 5세 미만 영아가 물·위생 관련 설사로 사망하는데, 화장실만 제대로 갖춰도 사망률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또 위생적인 화장실 없이 인간의 존엄을 논하긴 어렵다. 그리고 저개발국의 많은 소녀가 화장실이 없어 용변을 보러 밖으로 나갔다가 성폭행당하는 사례가 많다는 보고서도 있다.
험지에 취재 다닐 때, 애로사항 중 하나가 화장실이었다. 구 소련 시절 칸막이 없는 기차역 화장실에서 대변 볼 때 옆 사람과 눈이 마주쳤던 경험, 아프가니스탄 들판에서 서서 소변볼 때 신기하다고 몰려들어 구경하던 현지인들(남자도 앉아서 소변을 봐야 한다), 화장지 없이 물동이만 놓여 있던 아랍지역의 대중 화장실(왼손을 이용, 물로 씻어야 한다) 등등. 그래도 자연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는 괜찮은 편이었다. 최악은 체첸 수도 그로즈니와 같이 수도·전기가 끊긴 대도시였다. 골목길에서 볼일을 봐야 할 뿐만 아니라, 고층 아파트에서 대소변 봉지를 아래로 던지는 경우가 많았다.
실내에 위생적인 화장실을 갖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었으며, 이 때문에 높은 굽의 구두가 유행했다고 한다. 현대식 수세식 변기는 1596년 존 해링턴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선물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1775년 알렉산더 커밍스가 밸브식 변기를 특허 내면서부터다. 그리고 영국 런던만 하더라도 실내화장실은 1880년대엔 대부호 저택이나 최고급 호텔 정도에나 있었으며, 대중화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다.
한국의 화장실 시설은 세계 일류로서 손색이 없다. 외국인들은 공공 화장실에도 설치된 비데에 놀라곤 한다. 선진국에서도 비데는 아직 부잣집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묻지 마 살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심벨을 설치하고 있으나 안전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화장실은 은밀한 사적(私的) 공간이다. 화장실이 어느 정도 편안한 곳이냐는 그 사회의 문명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칼럼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731]트럼프와 터랑푸/최영범 논설위원/문화일보/2016.11.22 (0) | 2016.12.14 |
---|---|
[칼럼 730]이윤택 ‘꽃을 바치는 시간/김종호 논설위원/문화일보/2016.11.21 (0) | 2016.12.13 |
[칼럼 728]亡徵/박학용 논설위원/문화일보/2016.11.17 (0) | 2016.12.04 |
[칼럼 727]삼성의 ‘전격Z작전’/홍수용 논설위원/동아일보/2016.11.16 (0) | 2016.12.03 |
[칼럼 726]이방카 트럼프/고미석 논설위원/동아일보/2016.11.15 (0) | 2016.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