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욱경(1940∼1985) 화백은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이미지를 화폭에 많이 담았을 뿐 아니라 삶 자체도 격정적이어서 ‘불꽃 화가’로 일컬어진다. 그런 그를 두고, 시인·화가·무용평론가였던 고(故) 김영태는 ‘쬐그만 여자/ 얼음 같기도 하고/ 불같고/ 장작 같기도 하고/ 눈처럼 하늘에서/ 매일 내려오는 여자’ 하는 시 ‘화산 같은 여자’를 짓기도 했다. 그는 최 화백이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은 채 갑작스레 세상을 등지기 몇 달 전에 화실 무무당(無無堂)을 찾아갔었다. 당시 ‘5피트 2인치의 작은 키, 43킬로그램의 체중으로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500호짜리 대작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한 치도 양보 없이 자기 삶에 충실한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일어나라! 좀 더 너를 불태워라’ 하는 글귀를 최 화백이 화실 벽에 써 붙여 놓았던 배경도 달리 있을 리 없다. 대담하고 화려한 색과 자유분방한 필치로 내면의 열정과 자유에 대한 열망, 자연의 생명력, 여성의 정체성 등을 작품화한 그가 일단 그리기 시작하면 두문불출할 뿐만 아니라 사나흘씩 굶으면서까지 치열하게 매달린 것도 그 연장선이다. 추상표현주의를 바탕으로 독자적 화풍을 정립한 그의 그림은 내용뿐 아니라 제목 또한 철학적이면서 상징성이 두드려졌다. ‘시작이 결론이다’ ‘성난 여인’ ‘뜯어 붙인 시간들’ ‘이카루스의 눈물’ ‘섬들처럼 떠 있는 산’ ‘미처 못 끝낸 이야기’ ‘학은 학으로 남고 봉황은 날아간다’ ‘열애’ 등. 그의 시집 ‘조약돌’(1965년) ‘낯설은 얼굴들처럼’(1972년) 등도 마찬가지다. 거기 담긴 시 중의 하나는 ‘행복한 것 중의 하나는/ 두통이 없는 것이랍니다/ 마음이/ 천치처럼 단순하여/ 늘 웃어버릴 수 있는 것이랍니다’ 하고 읊었다.
열정적인 만큼 순수하기도 했던 그의 감성은 비 오는 날에 어느 식당의 창가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려 그 이유를 묻자 “비가 오잖아” 하고 대답한 일화로도 확인된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의 작품 제작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 자신과의 대화다. 그것도 정직한 대화다.” 1963년부터 1978년까지 최 화백의 미국 체류 기간 작품 7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8월 31일 개막,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예술도 삶도 불꽃 같았던 그의 작품들 앞에 서면 누구나 가슴속에 불꽃이 일렁일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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