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기

[칼럼 703]‘불꽃 화가’ 최욱경/김종호 논설위원/문화일보/2016.10.13

시온백향목 2016. 11. 5. 20:35

 최욱경(19401985) 화백은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이미지를 화폭에 많이 담았을 뿐 아니라 삶 자체도 격정적이어서 불꽃 화가로 일컬어진다. 그런 그를 두고, 시인·화가·무용평론가였던 고() 김영태는 쬐그만 여자얼음 같기도 하고불같고장작 같기도 하고눈처럼 하늘에서매일 내려오는 여자하는 시 화산 같은 여자를 짓기도 했다. 그는 최 화백이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은 채 갑작스레 세상을 등지기 몇 달 전에 화실 무무당(無無堂)을 찾아갔었다. 당시 ‘5피트 2인치의 작은 키, 43킬로그램의 체중으로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500호짜리 대작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한 치도 양보 없이 자기 삶에 충실한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일어나라! 좀 더 너를 불태워라하는 글귀를 최 화백이 화실 벽에 써 붙여 놓았던 배경도 달리 있을 리 없다. 대담하고 화려한 색과 자유분방한 필치로 내면의 열정과 자유에 대한 열망, 자연의 생명력, 여성의 정체성 등을 작품화한 그가 일단 그리기 시작하면 두문불출할 뿐만 아니라 사나흘씩 굶으면서까지 치열하게 매달린 것도 그 연장선이다. 추상표현주의를 바탕으로 독자적 화풍을 정립한 그의 그림은 내용뿐 아니라 제목 또한 철학적이면서 상징성이 두드려졌다. ‘시작이 결론이다’ ‘성난 여인’ ‘뜯어 붙인 시간들’ ‘이카루스의 눈물’ ‘섬들처럼 떠 있는 산’ ‘미처 못 끝낸 이야기’ ‘학은 학으로 남고 봉황은 날아간다’ ‘열애. 그의 시집 조약돌’(1965) ‘낯설은 얼굴들처럼’(1972) 등도 마찬가지다. 거기 담긴 시 중의 하나는 행복한 것 중의 하나는두통이 없는 것이랍니다마음이천치처럼 단순하여늘 웃어버릴 수 있는 것이랍니다하고 읊었다


 열정적인 만큼 순수하기도 했던 그의 감성은 비 오는 날에 어느 식당의 창가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려 그 이유를 묻자 비가 오잖아하고 대답한 일화로도 확인된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의 작품 제작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 자신과의 대화다. 그것도 정직한 대화다.” 1963년부터 1978년까지 최 화백의 미국 체류 기간 작품 7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831일 개막,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예술도 삶도 불꽃 같았던 그의 작품들 앞에 서면 누구나 가슴속에 불꽃이 일렁일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