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감상

<384>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시온백향목 2016. 11. 1. 23:47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장석남(1965)

 

 

1

찌르라기떼가 왔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

검은 새떼들

찌르라기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

 

저녁 하늘을 업고 제 울음 속을 떠도는

찌르라기떼 속에

환한 봉분 하나 보인다

 

2

누군가 찌르라기 울음 속에 누워 있단 말인가

봄 햇빛 너무 빽빽해

오래 생각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저 새떼들이 나를 메고 어디론가 가리라,

저 햇빛 속인데도 캄캄한 세월 넘어서 저기 울음 가파른 어느

기슭가로

데리고 가리라는 것을 안다

 

찌르라기떼 가고 마음엔 늘

누군가 쌀을 안친다

아궁이 앞이 환하다

 

----------------------------------------------------------------------------------------

 

화자는 들판이나 산기슭의 아궁이를 때는 집에 살고 있다. 도시의 분답을 피한 이 생활이 형편에 따라서인지, 마음이 이끌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시에 적요감이 배어난다. 봄날의 이른 저녁, 아직 햇빛은 창창하지만 대기에 찬 기운이 돌기 시작할 때 찌르라기떼가 왔단다. 찌르레기 울음소리는 들어본 바 없지만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말이 있듯이 찌르찌르찌르울 것 같다. 떼로 우짖으면 자글자글 끓는 듯할 그 소리가 쌀 씻어 안치는 소리라니 참으로 그럴싸한 참신한 표현이다. 화자는 찌르레기 소리가 소란해서 하늘을 올려다봤을까, 아니면 그 소리가 멀리서 들릴 때부터 지켜봤을까. 찌르레기 떼 우짖는 소리는 점점 커지다가 점점 작아졌을 테다. 새 떼가 드리우는 한 폭의 커다란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와서 화자를 덮치고는 빠르게 지나갔을 테다. 빛과 그림자, 소란과 정적의 역동적 대비가 현기증 날 만큼 생생하다. 정적(靜的)인 묘사의 세밀함으로 시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장석남의 힘!

 

찌르라기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저녁 하늘을 업고 제 울음 속을 떠도는/찌르라기떼 속에/환한 봉분 하나 보인다’, 찌르레기는 어디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돼야 우리나라에 날아드는 새다. 멀어지는 찌르레기 대열의 휜 데가 햇빛으로 환하게 둥근 것에서 봉분을 연상하다니, 화자는 아무래도 이생의 쓸쓸한 봄을 지나는 게다.

 

황인숙 시인


'시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382>춘신(春信)  (0) 2016.11.03
<383>선물  (0) 2016.11.02
<385>산양  (0) 2016.10.31
<386>반작반짝  (0) 2016.10.30
<387>그이 얼굴  (0) 201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