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 ―고이케 마사요(1959∼ )
호타카의 깊은 산속 온천에서
산양과 마주쳤던 다섯 살 가을
산양은 발소리도 없이 다가와
자옥한 수증기 속에서 알몸인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산양을 물끄러미 맞바라보았다
무리에서 벗어난 산양과
외톨박이로 홀로 있던 나
나는 손으로 온천물을 떠서
산양을 향해 뿌렸다
말 대신 건넨 인사였는데
산양은 조금 놀란 듯했다
온천물에 젖은 산양의 가슴털은
산양의 외로움이 젖은 것 같았다
바람이 불어 숲을 쓸고 갔다
나뭇잎이 흔들렸다
이윽고 산양은 조용히 몸을 돌리더니
가만가만 뛰어 산을 향해 되돌아갔다
꿈을 꾸듯 온천물에
깊은 밤 살며시 발끝을 담그면
자옥한 수증기 너머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오고
그때 만난 산양이
틀림없이 찾아오리라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아득한 우주의 시선으로
가슴털의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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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의 노천(露天) 온천에 어린아이가 혼자 몸을 담그고 있다. 아이가 다리를 쭉 뻗고 앉아도 물이 가슴께에 찰랑거릴 정도의 안전한 깊이겠지만, 잠시라도 어른 없이 두다니 화자는 퍽 똘똘하고 차분한 아이였나 보다. 온천 가장자리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등을 기댄 채 아이는 좀은 불안하고 외로운 기분으로 물을 참방거렸을 테다. 그 소리에 이끌려 찾아왔을까. ‘자옥한 수증기 속에서 알몸인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산양 한 마리. ‘나도 산양을 물끄러미 맞바라보았’단다. 화자는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좋아하는 아이였나 보다. 산양도 화자만큼 어렸을 테다. 무구한 생명체들의 고즈넉한 조우. 서로 호감을 갖고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수줍은 존재들의 인사가 세 번째 연에 펼쳐진다. 아이가 작은 동작으로 끼얹은 물을 맞을 정도로 산양이 가까이 있다. 산양은 제 발로 온천에 찾아온 만큼 물을 싫어하지 않겠지만 ‘조금’ 놀랐을 테다. 심술쟁이라면 산양의 얼굴을 겨냥했을 텐데 아이는 목 아래로 물을 뿌렸다. 그래도 가슴털이 젖은 것을 보니 미안하고 안 된 마음이 드는 아이다. ‘바람이 불어 숲을 쓸고’ 가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이윽고 산양은 조용히 몸을 돌리더니/가만가만 뛰어 산을 향해 되돌아갔’단다. ‘자옥한 수증기’ 속에서의 한순간이 ‘꿈을 꾸듯’ 펼쳐지는 동화 같은 정경이다. 동화는 어린이가 사는 세계다. 어른이 없는 이 세계는 외로운 어린이의 가슴에서 더 생생할 테다. 그래서 어른이 된 뒤 외로울 때면 거기 ‘깊은 밤 살며시 발끝을’ 담글 수 있을 테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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