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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687]미르/이현종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26

시온백향목 2016. 10. 17. 20:44

 ‘()이 한류라는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한다.’ 용의 순우리말인 미르를 따온 재단법인 미르는 지난해 10월 발족할 때 이런 포부를 강조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박근혜 대통령이 1952년생 용띠다. 한국문화의 상징이라는 의미에서 미르라는 이름을 지었을 수도 있지만 박 대통령을 의식해 지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쪽도 있다. 과거 대통령들과 관련된 재단이름을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육영재단은 육영수 여사를 연상시키고,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 육 여사의 를 따왔다. 서울대 기숙사였던 정영사(正英舍)도 마찬가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日海) 재단은 호를 차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계재단은 청계천 복원 사업을 연상시킨다. 김대중·노무현 재단은 이름을 직접 따왔다. 박 대통령은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영남학원 등의 재단이사장을 한 번씩 거쳤을 정도로 관련이 깊다.


 국내 굴지의 16대 대기업이 486억 원이라는 거금을 출연해 만든 미르재단은 한류를 세계화하고 문화 창조기업을 육성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표방했다. 미르재단은 지난 2015년 기준 국내 공익법인 34000여 곳 중 출연금 규모로 보면 23, 문화재단 중에서는 삼성문화재단을 뛰어넘는 1위다. 이런 초대형 재단이 1년이 다 돼 가는데 활동 내용을 보면 용은커녕 미꾸라지도 안 된다. 지난 1년간 이 재단은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 프랑스 순방 때 한식요리 시식행사를 주관한 것이 전부다. 사업으로는 프랑스 파리의 명문 요리학교 에콜 페랑디에 한식 교육과정을 포함시키고 프랑스 식당을 한국의 집에 여는 계획뿐이다. 국내 최고의 문화재단이 이사진도 제대로 구성돼 있지 않은 데다 1년에 매달 억대의 경비를 쓰면서 한 사업이라곤 고작 이 정도뿐인데도 수백수십억 원을 기부한 기업들이 가만히 있는지 미스터리다.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 은 자체 재단으로 나름의 문화,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있음에도 왜 굳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도해 이런 재단을 만들었는지 설명이 안 된다


 아웅산 사태 희생자 지원 명목으로 당시 598억 원을 기부받은 일해재단, 1099억 원을 받은 새세대 심장재단도 취지는 그럴 듯했지만 실상은 추악했다. 박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도 이 재단이 그대로 존속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