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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686]네이선 헤일과 로버트 김/최영범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22

시온백향목 2016. 10. 16. 16:43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의 중앙정보국(CIA)에는 독립전쟁 당시 약관 21세의 나이로 영국군에 교수형을 당한 네이선 헤일(Nathan Hale) 대위의 동상이 손과 팔이 각각 묶인 형상으로 우뚝 서 있다. 그는 1776921일 롱아일랜드 전투 때 자원해 영국군의 움직임을 염탐해 보고하다가 체포됐다. 영국군은 다음 날 오전 11시 재판 절차도 없이 스파이 혐의로 교수형을 집행했다. 240년 전 바로 오늘이다.


 조국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게 억울할 뿐이다.(I only regret that I have but one life to lose for my country.)” 미 역사상 첫 스파이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1773년 예일대를 졸업하고 학생을 가르치다 대륙군 장교로 갓 입대한 청년치고는 너무나 의연했다. 그의 동상은 모교 예일대와 법무부 등에도 세워져 조국과 명예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던 그의 애국심을 기리고 있다. 그의 죽음은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의 지휘 아래 대륙군이 정보활동을 강화해 전쟁에서 이기는 계기가 됐다. 그는 자신이 한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을 한 이유 때문에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20년 전 1996924일 한국계 미 해군정보관 로버트 김(76·김채곤)은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국군의 날기념 리셉션장에서 미 연방수사국(FBI)에 긴급 체포됐다. 군사 기밀 39건을 한국대사관 무관 백동일 대령에게 넘긴 스파이 혐의였다. 그가 넘긴 마지막 정보는 북한 무장간첩 11명이 살해되고 13명이 사살(1명 생포)된 강릉 앞바다 북한 잠수정 좌초 사건이었다. 미군은 남한 영해로 들어온 잠수정 2척을 3시간 간격으로 추적하고 있었지만 정작 한국군에는 이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성조기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가슴속 조국을 외면하지 못했던 그에게 9년 징역과 보호관찰 3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조국은 냉정했다. ·미 갈등을 우려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한국 정부와 무관한 사건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그는 원망하지 않았다. 지난해 겨우 복권됐지만 궁핍한 연금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다시 방한한 그는 추석 성묘를 다녀온 후 저서 로버트 김의 편지출판기념회를 21일 서울서 열었다. 공교롭게도 헤일 대위가 체포된 그날이다. 그는 지금도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조국은 아직 자발적 스파이에게 영웅대접은 커녕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