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추억의 동창회 / 그대와나 입이 셋이 모이면 동창회 이야기를 한다. 왜 하필이면 초등학교 동창회가 성행하는 것일까. 아마 대학 동창은 시대별 사연들이 많아 그런지 연령대가 다양해서 잘 모일수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럼 고등학교 동창은 어떠한가. 아마 한마디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지역 사회의 중심이 되는 학교로 모인 터이라 그런지 잘 모여지질 않는다. 그러면 중학 동창은 또 무슨 연유로 쉽게 모일수가 없는가. 아마 초등학교보다 더 모이기가 애매해서일 것 같다. 아무리 추수려 봐도 마땅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다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도대체 얼마만의 일인가 그 중에 자주 보는 친구들도 있지만 전혀 일면식이 없어 보이는 친구라고 아니 동창이라고 어색할 정도의 얼굴로 변해있는 코흘리개 때의 모습을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는 동창이 있다. 이럴 땐 동창이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금방 말을 함부로 놓을 수도 없다. 내가 동창들과 초등학교를 다닐 땐, 형 같은 사람들과 함께 다닌 적이 많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로 지내는 사람도 있고, 전혀 초면인 듯 한 사람도 있어서 자리가 어색할 때도 있으나 이내 친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 곳에 숨어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모든 걸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한다지만 대화중에 거리감과 어색함이 머털 거리기 시작한다. 알면 알수록 더 벌어지는 간격. 그것은 누구나 한번쯤 느낀 삶속의 경제적인 격차인 것 같다. 저 친구는 저렇게 번쩍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한 신세가 되었을까 하는 자격지심이랄까, 왠지 소외감을 느끼며 동창회를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동창회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그런 건 있게 마련이지만, 이곳 역시 사람들의 집합체라 그런지 친구의 잘됨을 박수쳐주지 못하고 열등의식에 발길을 돌리고 마는 코흘리개 동창들의 순수한 마음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긍정적으로만 생각함이 옳을 것 같다. 마음의 무거운 시계추 내려놓고 그냥 코 흘리게 생각으로 모여서 한식이 되건 중식이 되건 간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도 마음껏 비벼서 먹어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맛깔나게 비벼서 그 자리의 생각을 그 자리에서 먹고 소화하는 방법으로 코 흘리게 동창들의 옛 이야기에 취해서, 책 보따리 맨 마음으로 돌아가 봄이 누구를 막론하고 좋을 듯하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대화 도중에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 한 대목이 생각난다. 여자 동창들은 남자 동창들을 볼 때 옛 동무가 아니라, 동생 취급을 한다는 것이고 남자 동창들은 친구라기보다 너의 남편보단 내가 영계니 동창회 나와서 우리들을 만나고 대화 할 수 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라는 웃음 띤 충고에 한바탕 웃기도 한다. 남자 동창보다 세네. 살 위인 남편과 함께 사는 여자들의 입장에선 아마 동생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대화를 해 보면 어딘지 모르게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싱싱함도 있으니, 그냥 못 이긴 척 봐 주기도 할 것이다. 그게 무슨 따져봐야 별것도 아니지만, 웃어보자고 생각지도 못한 옛날이야기를 꺼내서 이리도 재어보고 저리도 재어보며, 살아온 과거지사를 조금씩 꺼내 보이기도 하고 슬그머니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누가 봐 주기라도 기다리듯 손을 들락대어 보이기도 하는 그런 해프닝을 연출 하는 곳이 동창회의 풍경이기도 하다. 누가 잘 났다고 나서거들랑 그래 너 코흘리개 땐 바보 같아 보였는데 지금 보니 잘났다고 박수도 쳐 줌이 동창회를 나가면 나갈수록 가을 담장에 누렇게 익어가는 호박처럼 익기를 기다려서 나중에 서로 마음 넣고 푹 쪄서 나눠 먹어가며 부부간의 주렁주렁 메어 달린 가족의 애경사에도 오가는 작은 마음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동창회 나감의 매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동창회의 일순간을 피력해 본다. 내가 동창회 나갈 때 아내의 질투가 분출 했을 때 쓸데없는 마음먹지 말라고 충고를 했는데, 이제 아내가 동창회를 다녀와서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으니 도리어 내 마음에 시샘과 질투가 나는것은 무슨 연유일까 생각해 보며, 혼자 입 보따리를 풀고 사람은 한평생을 살아도 철이 덜 든 구석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혼자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