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스크랩] 심겨진 곳에 꽃이 피게 하는 숨겨진 보석, 트루디 김 사모님을 만나다....

시온백향목 2011. 12. 5. 21:00

 

한결같은 겸손한 모습의 진정한 크리스천으로서 늘 모범을 보이며 50여 년 동안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준 트루디 김 사모님의 인생이야기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끔 하는 교과서와도 같다. 한 때, 2006년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기도 했지만 기도와 강한 의지로 건강을 회복하고 하루 하루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심겨진 그곳에 꽃피게 하십시오>를 출간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항상 밝고 온화환 미소의 트루디 김사모님을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사모님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A 요사이 저의 건강은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플 때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덕분이라고 느껴집니다. 여름 동안 딸의 가족이 살고 있는 남가주에서 지냈지만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Q 요즘 사모님의 책 <심겨진 그곳에 꽃피게 하십시오>가 출간된 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큰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책인지 잠시 소개해 주세요

 

A 195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화물선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해서 내리면서 한국 며느리가 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 뿌리 내린 곳에서 활짝 피어나리라 (Bloom where you are planted)'를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한국 땅에 심겨져 꽃을 피우리라고 다짐했어요. 식물은 심겨진 자리가 싫다고 옮겨갈 수 없어요. 오히려 비바람 치고 폭풍우가 불어도 그 자리에서 견뎌 낼 때 가장 아름다운 결심을 맺을 수 있죠. <심겨진 그곳에 꽃피게 하십시오>에서는 52년간 한국인으로 살면서 아내, 선교사, 사모, 엄마, 교육자로서 다양한 자리에서 심겨진 ’트루디‘를 만나 실 수 있어요.


Q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나요?

 

A 저는 김장환 목사와 1958년 8월에 미시건 주에서 결혼을 하고 그 다음 해에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기억 중에 하나는 그 당시에 미국에서 한국까지 가기 위해 배를 타고 18일 동안의 기나긴 여정을 마친 뒤 남편의 가족들을 만난 일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피부색이 다른 며느리를 정말 따뜻하게 포옹해 주시며 반겨주셨던 어머님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열 두 식구가 생활하고 있는 농가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둘로 인해 14명으로 늘어난 식구들은 방 세칸을 나눠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 어머님은 신혼인 저희를 위해 자신의 방까지 양보해 주셨습니다. 결국 어머님은 큰 아버지의 딸 다섯 명과 함께 비좁은 한방에서 생활을 하셨죠. 저희 한국 생활은 환경은 비록 열악했지만 환경을 이길 수 있는 어머님과 가족들의 사랑을 풍성히 맛보며 시작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감격스러웠던 기억은 초창기에 가족이 하나 둘 씩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일이었습니다. 특히 어머님께서는 신앙에 유달리 관심이 많으셨고 복음에 대해서 호기심도 많은 편이었습니다. 결국 먼저 어머님이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나머지 식구들도 점차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부터 예수님을 영접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놀랍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Q 무엇보다 사모님은 최고의 엄마로 유명하신데요 엄마로서 트루디 김을 소개해주세요

 

A 저에게 있어서 가장 힘겨우면서도 보람되었던 일은 세 자녀를 한국에서 양육하게 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양육하는데 어떤 비결이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자녀 한명 한명에게 영적으로,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감성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정말이지 저희들의 힘이나 지혜로 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자녀들과 함께 저희 내외도 모든 부분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세 아이는 한국에서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대학은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 때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저희들은 특별히 자녀들에게 사역에 대한 부담을 준 적은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 주며 기도해 주는 정도였다고 할까요? 주변의 많은 분들이 아이들의 미국 육학 기간에 자신들의 집을 열어 주시고, 특별히 마음을 열어주신 일들로 인해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결국 삼 남매는 학업을 마친 뒤에 각각 배우자들 만나게 되면서 장남과 차남은 한국에서 목사로서 생활을 하게 되었고, 딸은 미국에 남아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사모님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사모님께서 다발성 골수종에 걸리셨을 때 다함께 기도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사모님의 투병생활 이야기를 잠시 들려주세요

 

A 약 6년 전에 저는 몸이 몹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병원 한 번 가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던 저에게 나타난 첫 번째 증상은 허리 쪽에서 느낀 심한 통증이었습니다. 물론 그 심각성을 전혀 모른 채 뉴욕에서의 강연 차 출국을 했다가 한 번의 강연 후에 곧바로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서야 저는 다발성 골수종 이라는 희귀병 (일종의 골수 암)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암 3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곧바로 수술과 항암 치료,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좋은 의사 분들의 사랑과 돌봄은 물론,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비교적 빠르게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변함없이 간호해 주고 기도해 주었던 가족의 사랑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 보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그 어떤 기적도 가능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제목을 함께 나눠주세요

 

A 솔직히 저희 내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에 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기도하기는 하나님께서 만남을 허락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저희 자녀들 역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희들을 사랑해 주며 아껴주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희들도 그들처럼 신실한 치구가 되어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기도제목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위한 작은 빛과 소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해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섬길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내어주신것처럼 (갈라디아서 2:20) 저도 남을 위해 희생하며 내어줄 수 있는 빛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처 : FEBC Weekly News
글쓴이 : febcp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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