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화(墨畵)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1921∼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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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줄 안 되는 글로 이렇게 여운이 끝없는 울림이라니!
아마 혼자 사실 터인 할머니는 눈뜨자마자 외양간에 가, 여물통에 여물을 듬뿍 쏟아서 외동 소에게 먹였을 것이다. 당신은 찬 없는 밥을 훌훌 뜨셨을 것이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선 할머니와 소는 해질 녘까지 묵묵히, 때론 논일을 때론 밭일을 했을 것이다.
밀레의 유명한 그림 ‘만종’ 속 농부 부부는 멀리 마을에서부터 들녘으로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고개 숙이고 두 손 모아 기도드리고 있다. 그처럼 경건히, 공손히, ‘묵화’ 속 할머니에게 고개 숙이고 싶다. 할머니와 소의 고되고 죄 없는 삶….
시 속의 할머니에게도 추석이라고 건너와, 싸이의 ‘말춤’을 추며 웃음 드릴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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