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게 -황성희(1972~)
그때 나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제목도 없는 시간 속으로
태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지고
나는 마치 처음부터
빨래 건조대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마치 처음부터
엄마엄마 보행기로 거실을 누비는
저 아이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마치 처음부터
베란다 너머 저 허공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익숙해익숙해미치겠어
오늘 하루도 눈감아 주는데
거울아 거울아!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니?
하고 묻는 것이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마치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이제껏 살고도 날 모른단 말이야?
비아냥댈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도대체 빨래나 널고 있지 않으면
저마다의 베란다에서 저렇게도 마음 편히 말라가는
아파트의 빨래들이나 멍하니 감상하지 않으면
거울아 거울아!
도대체 무엇을 하겠니?
나는 마치 처음부터 나로
수천 년 수만 년을 살아온 듯
너무도 익숙하게
내 팔 속으로 내 팔을 뻗고
내 다리 속으로 내 다리를 뻗고
내 얼굴 속으로 내 얼굴을 드밀며
안녕안녕선생님?
안녕안녕친구들?
오늘도 이렇게 인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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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가득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가롭게 빨래를 너는 시간, 저 안에서는 한 돌이 안 된 아기가 “엄마, 엄마,” 옹알대면서 보행기를 타고 거실을 누빈다. 결혼을 꿈꾸는 젊은 여인들이 바라마지 않을 정경인데, 정작 당사자인 화자의 마음은 겉돌고 있다. 제 아기를 ‘저 아이’란다.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에서 줄리언 무어가 제 아이를 한없이 낯선 눈길로 바라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화자는 아기를 사랑할 테다. 어쩐지 육아도 살림도 ‘마치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능숙할 것 같다.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남편이 속을 썩이는 것 같지도 않고, 아기도 본인도 건강한 것 같다. 그런데도 화자는 ‘익숙해익숙해미치겠어!’ 비명을 지른다. 이 미칠 것 같은 권태와 채워지지 않는 공허…. 안락한 가정을 이루는 것만으로 한생을 보내는 것을 도저히 수락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제 삶의 시간이 장삼이사의 고만고만한 ‘제목도 없는 시간’인 것이 가당치 않게 느껴지는데 어찌 호락호락 행복할까. 자기애 강한 엄마시여, 아이는 자라게 마련이지요. 곧 당신만의 ‘무엇을 할’ 시간이 주어질 거예요.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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