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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10]구중궁궐/이현종 논설위원/문화일보/2016.11.03

시온백향목 2016. 11. 13. 16:33

 청와대를 구중궁궐이라 하지만 그중에서도 대통령의 생활 공간인 관저는 더 고립돼 있다. 북악산 바로 밑에 위치한 관저는 지상 2, 지하 1층에 6093로 본채와 별채, 사랑채, 회랑 등 전통양식으로 지어졌다. 가족들이 함께 거주하면 모를까 집이 너무 크게 설계돼 역대 대통령들은 관저생활이 다들 편하지 않다고 증언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침실이 너무 커서 반으로 줄이는 공사를 했고 밤에 인기척이 없어 경호원을 집 안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관저가 불편한 또 하나의 이유는 북악산 바로 밑에 위치해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하면 뒷산이 소리를 막아 아주 선명하게 들린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연일 광화문광장에서 광우병 촛불시위가 벌어졌을 때 시위대의 아침이슬노랫소리와 구호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 매일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부부가 함께 생활한 역대 대통령도 이럴진대, 독신인 박근혜 대통령의 관저생활은 고독과의 싸움일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 넓은 관저 안에서 박 대통령은 책이나 컴퓨터를 볼 때 스탠드 하나만 켜고 모든 불을 끄고 있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공식 일정이 없을 때는 주로 관저에서 업무를 봐 왔고, 최근 청와대를 나간 문고리 3인방이 근무하며 대통령의 심부름을 했다. 이러니 비서실장도 대면보고를 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관저로 갈 때는 여성 비서관과 동행했을 정도라고 한다.


 최근 최순실 씨가 부속실 이영선 행정관이 운전하는 관용차를 타고 수시로 관저를 들락날락하고 심지어 잠까지 잤다는 주장도 나왔다. 2013년 집권 초 청와대가 물품을 구입하면서 고급 침대 3개를 주문한 것을 두고 당시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왜 3개나 구입하느냐고 청와대에 따졌지만 사생활이라 밝힐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최 씨가 쓰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혹이 일고 있는 대목이다.


 홀로 적막한 청와대에서 시위대의 하야 구호를 듣는다면 착잡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공식 라인을 통하지 않고 최 씨에게 모든 것을 의존했던 업보다. 청와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 숨겨질 줄 알았겠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최측근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11개월 정무수석 기간에 한 번도 독대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