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감상

<405>봄에 관한 어떤 추억

시온백향목 2016. 10. 8. 13:19

봄에 관한 어떤 추억 상희구(1942)

 

국민학교 적 소풍날

꽁보리밥에 양념 친 날된장을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갔는데

다른 친구들 모두 쌀밥으로 싸왔거니 하고

산모퉁이에 숨어서 점심을 먹었다

이 기억만은 선연한데

그날 그 소풍 간 곳이 어디였는지

그날 어머니는 무슨 색깔의 옷을 입으셨는지

그날 아침밥은 무슨 반찬으로

어느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는지

그날 내가 사자표 가루치약으로

양치질을 했는지 어쨌는지

그날 우리 집 뜨락에

철쭉이 몇 송이나 꽃봉오릴 매달았는지

그날 우리 집 앞을 어떤 자동차가

몇 대나 지나갔는지

그날 신문에 무슨 기사가 실렸었는지

그날 또 어머니가

어떤 종류의 눈물을 흘리셨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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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옮긴 권투선수 정복수는 상희구의 대구시리즈 시집 중 한 권으로 대구의 사람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지방도시 대구를 무대로 195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시인은 하나하나 되살린다. 대구사람 상희구가 그 시절, 그 사람들을 육정(肉情)에 가까운 사랑을 담은 사투리로 불러내는 건 단순한 향수로서가 아니다. 차라리 그는 외치고 싶을 테다. ‘응답하지 마라, 1950년대!’ 그 시절의 서민 생활은 오늘에서 보자면 빈민급이다. 하물며 서민도 못 되는 사람들의 삶은 어땠겠는가. 미친 사람, 오갈 데 없는 사람, 굶주리는 사람이 흔해터진 그 시대의 특색은 한마디로 지지리도 가난함이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 이름을 날린 사람, 선택받은 사람도 있어, 그리고 그들이 바닥의 사람들을 저버리지 않아 시절을 넘기는 데 디딤이 됐을 테다. 생각느니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지리고 비리고 누린 가난의 냄새여! 비애의 내여! 진저리치면서도 한 가닥 시인의 마음을 당기는 끈은 선린((,))의 추억이다.

 

대구시편으로는 드물게도 사투리 없이 쓰인 시다. 시 속의 그날은 소풍 당일을 포함한 그 시절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어린이에게는 어린이들의 세계가 있다. 그런데 그 세계의 잣대는 어른 사회의 잣대와 비슷하다. 어린이는 철이 없어 외부 환경에 더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어떤 어린이에게 소풍은 가난을 새삼 뼈저린 외로움으로 느끼게 하는 행사가 될 수 있다. 학교 급식시간이면 매번 이런 고통을 느낄 어린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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