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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646]엘리트의 탈북/선우정 논설위원/조선일보/2016.08.19

시온백향목 2016. 9. 4. 18:54

 지난달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54)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혁명 3세대'에 속한다. 젊음을 일제 때 보낸 1세대, 6·25전쟁 때 보낸 2세대의 다음이다. 195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 사이 태어났다. 북한이 그나마 먹고살던 시절에 젊음을 보냈고 11년 의무교육 혜택을 받았다. 고난의 행군 때 성장기를 거친 4세대와 비교하면 이들은 '축복받은 세대'


 김일성은 간부 등용 때 빈농이나 노동자 계급을 우대했다. 그들을 특별히 사랑해서가 아니다. 피의 숙청을 통해 당대의 실력자를 도려냈기 때문에 밑바닥에서 새 엘리트를 퍼올릴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은 아버지와 달랐다.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했다. 주체사상이 유일 종교로 뿌리내려 엘리트 통제에 자신이 생겼는지 모른다. 태 공사는 이 혜택까지 받은 듯하다. 고교 때 중국에서 유학하고 외무성에 들어가서는 덴마크 연수를 경험했다고 한다


 우리 외교관이 겪은 일이다. 태 공사와 비슷한 세대의 북 외교관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간다고 해 환송회를 열어줬다. "지금 고민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 과외가 걱정"이라고 했단다. 선진국 교육에서 얻은 교양과 실력을 북한에서 어떻게 유지할지 고민이란 얘기였다. 해외 국제학교에 다니다가 북으로 가면 십중팔구 학업에 실패한다고 한다. 사실 자식이 북한 적응에 실패한 대표적 학부모가 김정일 아닐까. 스위스에 유학 갔던 첫째와 둘째 아들이 아직도 마카오 게임장과 에릭 클랩턴 공연장을 전전하고 있으니


 북한은 원래 인재가 많은 땅이다. 조선 500년 동안 평안도 정주는 한양 다음으로 많은 과거 시험 합격자를 배출했다. 함흥은 개성을 능가했다. 구한말 서구 문명과 신종교를 적극 받아들여 일찍 근대화를 경험한 곳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지식인이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대거 남으로 이동했다. 식견과 혈기를 겸한 북한 지식인이야말로 김일성 독재에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때가 북 인재들의 첫 엑소더스다. 그 기질이 지금도 남아있다면 2차 엑소더스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문제는 한국이다. 19년 전 망명한 황장엽 선생은 태 공사보다 훨씬 거물이었다. 그때도 북 엘리트의 탈출을 예측했지만 잠잠했다. 로열패밀리 이한영의 망명 사실이 공개된 뒤에도 그랬다. 북 지배층이 단단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관리가 허술했기 때문일까. 황 선생은 한동안 대북 햇볕 정책의 장애물로 대접을 받았다. 이한영은 보복의 총구조차 피하지 못했다. 북 엘리트들이야말로 태 공사의 앞날을 두근두근 바라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