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금이 절창이다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 물밀며 걸어 들어간 자국 따라 무겁게 되밀려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동물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 넣는 것인지, 뻘이 빨아들이는 것인지 정강이까지 빠지는 침묵.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장 같다. 어디서 저런,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을 보라. 여인네들…… 여남은 명 누더기누더기 다가온다. 흑백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최후처럼 쿵, 트럭 옆 땅바닥에다 조갯짐 망태를 부린다. 내동댕이치듯 벗어놓으며 저 할머니, 정색이다. “죽는 거시 낫겄어야, 참말로” 참말로 늙은 연명이 뱉은 절창이구나,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문인수(1945∼ )
대개 여인들의 일터에는 분 냄새도 좀 풍기고 까르르 터지는 웃음과 수다가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 노동 현장에는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갯것을 캐는 동안에는 저마다 개펄 여기저기 뚝 떨어져 있고, 무거운 망태를 ‘정강이까지 빠지는’ ‘뻘’에서 트럭이 기다리는 데까지 옮기는 일은 벅차게 힘들어 숨이 모자란다. 입을 열기는 커녕 무슨 감정도 생각도 들지 않을 테다. 이 고생을 하면 돈이나 많이 생길까. 그렇다면 힘센 남정네도 보일 텐데 죄 여인네들, ‘여남은 명 누더기누더기 다가온다’. 할머니도 ‘조갯짐 망태를’ 짊어지고 오신다. 아, 고되고 고된 ‘산다는 이 일’! 아마 단단한 땅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는 시인은 숙연해진다.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장 같’단다. 우리가 때로 중얼거리는 ‘돈벌이의 지겨움’은 얼마만 한 엄살이며 응석인가.
시 속 ‘무성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정리해 주는 단 한 마디 대사, “죽는 거시 낫겄어야, 참말로” 이 절규를 ‘절창’이란다. 살아 있어 울컥 요동치는 할머니의 심사가 시인의 숨통을 틔운다.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들’을 또박또박 걸어가는 사람들, 시인의 가슴에 ‘질펀하게 번지는’ 삶의 ‘만금’.
라디오에서 마침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 주제곡이 남실거리는 푸른 바다처럼, 수평선 멀리 흘러가는 흰 구름처럼 흘러나온다. 휴식과 낭만의 바다가 누구에게는 죽는 것이 낫겠는 바다다. 공평하지 않은 자연의 형편. 시인 문인수의 눈은 늘 후자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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