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감상

희망(希望)

시온백향목 2016. 8. 10. 18:48

희망(希望)



아름다운

어느 한 아름다운 날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가슴께에서

꽃과 사과이고 싶은 것은

꽃바구니의.

달빛에 씻긴 이슬을

이슬 머금은 배추가 진주(眞珠)처럼 아롱지며 트이는 아침을

푸른 바다 어리는 비둘기의 눈동자를

태양(太陽)이 웃으며 내려오는 하늘그 눈부신 계단에 핀

진달래를

또 신문(新聞)이 음악(音樂)처럼 뿌려지는 거리를

생각하는 것은.

여기

무수히 검은 총()알 자국 얼룩진

나무와 나무 사이

눈이 깔린 밤

여기에서.

오 두 마리

버들강아지 꼼지락이는 은() 목걸이를 생각하며,

꽃바구니의 꽃 그리고

사과이고 싶은 것은당신의

가슴께에서.

구름도

지구(地球)

인간(人間)

생활(生活)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고

다 함께 그리운 내가

전쟁(戰爭)의 숯검정이 자욱이 얼어붙은

내 눈시울 속에

서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 겨울날 아지랑이처럼

아스라이 서 있는

까닭이다.


전봉건(19281988)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의 소용돌이인데 겨울이 오고, 탄흔 무수한 나무와 나무 사이/눈이 깔린 밤’, 깨어 있는 한 병사가 있다. 방한복이나 제대로 입었을까. 어쩌면 닳아진 군복과 군화, 배도 고플 테다. 떠나지 않는 공포와 고통이 병사에게 아름다운/어느 한 아름다운 날을절절히 떠오르게 한다. ‘꽃바구니같았던 사랑의 시간, 아 너무도 그리운, 눈에 삼삼한 당신의 가슴께’ ‘꽃과 사과’! 달콤한 안식과 평화의 그런 날이 다시 올까. ‘푸른 바다 어리는 비둘기의 눈동자같은 그날이. 소중한지 모르고 흘려보내던 일상이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고/다 함께 그리운병사다. ‘구름도/지구도/인간도/생활도’! 신문도 참 오래 못 보았구나. 신문 파는 소년들이 손님을 부르는 외침으로 들썩거리던 거리, 시내 한복판의 소요며 분답도 평화의 그것인 양 어찌나 가슴 저리게 그리운지 신문이 음악처럼 뿌려진단다. ‘전쟁의 숯검정이 자욱이 얼어붙은병사의 눈시울에 이 모든 것이 꿈인 듯 아스라이들어선다.

시 속의 병사는 시인 자신일 테다. 시인은 살아남아 시를 쓰는데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병사,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욱신거리는 이 상흔이 전봉건의 많은 시에 담겨 있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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