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Egmont Overture in F Major Op.84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Kurt Masur
쿠르트 마주어
폭군의 압제에 시달리던 에스파냐를 구하려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에그몬트 백작. 죽음을 눈 앞에 두고 그는 창밖을 응시하여 고뇌에 빠져 있습니다.
애인인 클레르헨은 에그몬트를 구하려다 실패하여 자살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자유의 여신이 되어 환영으로 나타나 옥중의 에그몬트를 격려하지요.
이렇게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고 애인 클레르헨의 사랑을 서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벅찬 클라이맥스를 이끌어 내는 관현악곡이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입니다.
1810년 베토벤이 괴테의 에그몬트가 빈 부르크극장에서 상연될 때 희곡을 위한 극의 부수 음악으로 작곡하였는데 조국을 구하려는 에그몬트 백작의 기백과 영웅담에 걸맞게 베토벤은 에그몬트 서곡에서 영웅의 모습을 전하듯 장대하고 박력이 넘치는 서곡의 피날레 부분을 두 개의 주제와 환상으로 구성하여 이 선율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며 장대한 기백이 불타오르게 형상화하였습니다.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은 바로크 시대에서 고전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교향곡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작곡된 시점과 맞물려 장대하고 큰 규모의 관현악곡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현악기군과 목관악기군, 금관악기군, 타악기군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연주자 수를 대폭 늘려 음량을 획기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귀족들의 사저가 아닌 극장이나 교회 등 대규모 청중을 앞에 놓고 연주하는 환경으로 바뀐 덕분이지요.
이는 오페라가 당시 대중 음악의 중요한 장르로 등장했다는 점과 맞물리는데 지금은 전곡이 올려지지는 않지만 에그몬트 서곡 역시 당시 오페라 열풍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반세기 동안 이어진 오페라의 공백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이 자유를 외치며 유럽을 휘젓고 다니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 정신의 파고를 제지하고자 유럽 국가들은 시민들의 집회를 금지했고 극장에 모이는 것 자체가 죄악시 되었던 당시 유럽은 사실상 문화적 암흑기나 다름없었죠. 허락된 공연이라 하더라도 까다로운 검열은 피할 수 없었고 으레 체제와 권력에 위배되거나 도전적인 메시지가 담긴 오페라는 상연이 금지되거나 수정이 요구되었습니다. 자유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있던 베토벤으로서는 자신의 의도에 부합하는 오페라 작곡을 하기 어려워진 현실에서 추상적인 교향곡과 표제 음악에 몰입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지요.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역시 오페라 서곡 특유의 감각적이고 표피적인 흐름이 아닌 자유를 향한 갈망과 열정적인 사랑, 조국애가 뜨거운 선율로 흐르며 마치 베토벤 교향곡의 축소판을 듣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에그몬트는 세상을 구한 영웅이면서 동시에 권력에 아첨하지 않고 세상에 타협하지 않은 죄로 죽임을 당한 인물입니다. 이같은 이유로 괴테의 영웅적 인물상을 베토벤이 음악으로 형상화 한 에그몬트 서곡은 추모곡으로 많이 연주되기도 하지요. 쿠르트 마주어 (Kurt Masur) 비장함과 웅장함이 중첩되고 애절한 선율을 지닌 에그몬트 서곡의 연주에 있어 쿠르트 마주어는
동독 붕괴시 민주화의 정신적 지주로 정부 당국과 시민의 사이를 능란하게 조절해 유혈의 비극을 막아 낸 주역으로서 독일 낭만주의 걸작들에 감정적 표현을 불어넣는 작업에 특히 뛰어난 마주어는 일사불란한 통일감과 압도적인 힘,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악상의 진행으로 절로에그몬트의 영웅성을 연상케 합니다.
이와 동시에 패시지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며 낭만성을 살려 클레르헨의 숨결 또한 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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