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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822]참배 정치/이진 논설위원/동아일보/2017.04.05

시온백향목 2017. 4. 28. 16:38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자리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신라 고승 도선(道詵)이 명당으로 점찍어 이곳에 갈궁사(葛弓寺)를 세웠다. 이 절은 고려 때 화장암으로 바뀌었고 조선시대에는 화장사로, 지금은 호국지장사로 불리고 있다. 이 절에 들렀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만약 절이 없었다면 내가 묻히고 싶은 땅이라고 했다는 불교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관(地官)의 식견도 높았다는 이 전 대통령은 이곳에 국립묘지를 만들었다.


 국립묘지는 민족국가가 수립되면서 조성된 근대의 산물이지만 현충원에는 유교적 질서도 짙게 남아 있다. 묘지 크기가 사병은 3.3m²인데 장군은 8배 큰 26.4m². 대통령 묘역은 장군의 10배인 264m²로 왕릉이 부럽지 않다. 관존민비(官尊民卑)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4년 전 채명신 장군이 유언에 따라 사병 묘역에 안장돼 화제가 됐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장군 장교 사병 모두 4.49m²에 묻혀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어제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과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순으로 참배했다. 2012년 후보 때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참배한 그는 군부독재 권위주의 정치세력이 진정한 반성을 하면 내가 제일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엔 통합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것 같다. 정치인이 큰일을 앞두고 대통령 묘를 참배하는 것도 유교의 흔적이다. 미국에선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가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정도 말고는 대통령 묘가 대부분 고향에 있어 일괄 참배가 불가능하다.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를 놓고 논란이 이는 것은편가름 의식이 아직 강하다는 증거다. 이름 없는 호국영령을 상징하는 무명용사탑만 참배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마침 문 후보는 방명록에 5년 전에는사람이 먼저인 세상 만들겠습니다’, 어제는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썼다. 이제는 대선 후보들이 전직 대통령 묘역을 골라 참배하는 정치는 사라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