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로마가톨릭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독일 비텐베르크 성 성당 문에 내붙였다. 당시 교회의 면죄부 대량 판매를 논박한 이 대자보로 종교개혁의 불꽃이 타올랐다. 루터는 박해를 피해 숨어 있는 동안 라틴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고, 독일어 성경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덕분에 널리 퍼졌다. 복음(福音·GOOD NEWS)이 인쇄혁명을 타고 평민들에게 전파된 것이다.
권력자들은 새로운 정보, 즉 뉴스를 독점하려 한다. 뉴스의 확산이 권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믿어서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기원전 213년 책을 불태우고 이듬해 유학자 460여 명을 생매장한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최초의 사상 통제로 꼽힌다. 나폴레옹은 황제로 등극한 뒤 73개나 되던 파리의 신문을 4개로 쳐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적대적 신문 4개가 총검 1000개보다 더 두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정확한 미디어’라고 공격하는 뉴욕타임스는 되레 구독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거짓말을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고 포장하는 대통령 측에 맞서 ‘뉴스 문맹’을 퇴치하자는 독자들의 제안으로 ‘대학생 신문구독 스폰서 운동’을 벌여 한 달 만에 390만 달러(약 44억 원)나 모았다. 진실을 우습게 아는 트럼프 시대, 세상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신문을 온라인으로 전파하기 위해 후원자들은 130만 명의 1년 구독료를 기꺼이 기부했다.
글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있어야 문맹이 아니다. 이를 문해(文解·Literacy)라고 한다. ‘뉴스 리터러시(News Literacy)’도 마찬가지다. 가짜 뉴스와 팩트, 뉴스와 오피니언, 편견과 공정함의 차이를 분간해야 뉴스 문맹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모바일이 결합해 온갖 뉴스가 24시간 넘쳐흐르는 지금처럼 뉴스 문맹 탈출이 절박한 때가 없다. 전례 없는 한국의 조기 대선은 역설적으로 뉴스 문맹을 탈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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