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영된 ‘너의 이름은.’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흥행기록을 새로 썼다. 360만 명 넘는 관람객 중에는 너덧 번쯤 본 마니아들이 꽤 있었다. 서로 몸이 바뀌는 남녀 주인공 다키와 미쓰하를 연결해 준 것은 머리띠. 전차에서 다키와 마주친 미쓰하가 황망하게 헤어지면서 오렌지색 머리띠를 풀어 던져주며 “내 이름은… 미쓰하!”라고 외쳤다. 다키는 이 띠를 팔찌처럼 손목에 감고 다녔지만 미쓰하는 기억하지 못했다.
리본은 원래 매듭이나 장식용 끈을 말한다. 미쓰하가 머리를 묶었던 기다란 띠도, 선물상자를 포장할 때 쓰는 끈도 모두 리본이다. ‘인식(Awareness) 리본’은 특정 사안에 공감하는 이들이 브로치처럼 달고 다니는 일정한 모양의 리본을 가리킨다. 1991년 토니상 시상식에 제러미 아이언스가 에이즈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자를 차별하지 말자며 달고 나온 빨간 리본을 인식 리본 대중화의 첫 사례로 본다.
26일(현지 시간)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적지 않은 참석자들이 파란 리본을 옷깃이나 허리춤에 달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해 소송을 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을 지지한다는 뜻이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에마 스톤은 시상식이 끝난 뒤 화보 촬영 때 뒤늦게 파란 리본을 달기도 했다. 파란 리본은 의료계에서 전립샘암을, 정보통신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각각 나타낸다. 같은 색이라도 어느 분야에서 리본을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미쓰하의 외할머니는 ‘무스비(むすび·맺음 또는 결말)’를 아느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실을 잇고 사람을 잇고 시간이 흐르는 것이 모두 무스비’라고 알려준다. 같은 색 리본을 다는 이들은 한마음으로 이어져 있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자주 등장하는 리본은 사회 내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지금 한국이건, 미국이건 리본은 ‘저항의 연대’라는 함의가 더 크다. 뒤틀리고 얽히고 멈추기도 하지만 결국 이어진다는 무스비. 우리에게 ‘무스비의 시간’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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