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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653]구봉서와 수한무/이기환 논설위원/경향신문/2016.08.29

시온백향목 2016. 9. 11. 16:38

 이름이 길기로 유명한 이는 화가 피카소다.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루이스 피카소이다. 지금까지도 영어 알파벳으로 17단어인지 20단어인지 헷갈린다. 이제는 아버지의 성(루이스)은 온데간데없고, 파블로와 피카소(어머니의 성)만 남았다. 하느님과 조상의 축복을 받으라고 온갖 성인과 친지 이름을 다 붙여놓았다. 피카소처럼 진짜는 아니지만 코미디 소재로 쓰인 긴 불멸의 이름이 하나 있다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드셀라 구름위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197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구봉서·배삼룡 콤비가 선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폭넓게 알려진 김수한무가 아니라 배수한무 버전을 알고 있다. 구봉서가 배삼룡의 아들에게 오래 살라고 지어준 이름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와 두루미는 물론이고 삼천갑자(18만년)를 살았다는 동방삭에, 구약성서의 인물로 969년을 살았다는 무드셀라까지 집어넣었다. 한 가지 조건은 어느 상황에서도 풀네임을 불러야 무병장수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 아들이 물에 빠지자 비극이 일어났다. 위급상황인데 72자에 달하는 이름을 다 부르고, 다시 그 이름이 맞느냐고 확인하는 일로 시간을 허비했다


 ‘무한한 수명을 뜻하는 수한무(壽限無)’는 일본에서도 만담으로 폭넓게 전해졌다. 스님이 장수를 기원하는 이름을 여럿 일러주었는데, 아버지가 고민을 하다가 스님이 가르쳐준 이름을 모두 붙였다는 것이다. 입학식 날에 자고 있던 아들을 깨우려고 이름을 불렀는데, 그사이 여름방학이 되었다는 버전도 있다. 뭐니뭐니 해도 수한무코미디의 백미는 구봉서·배삼룡 콤비이다. ‘수한무이름을 리듬에 맞춰 불렀던 두 사람의 웃픈 코미디는 불멸의 전설이다. 최근 별세한 코미디언 구봉서는 생전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나라 했다. 배고픈 시절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수한무’ 72자 이름을 리듬에 맞춰 불러보며 구봉서 덕분에 눈물나게 웃었던 추억에 잠시 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