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사육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중국에서는 5000년 전쯤부터 집에서 길렀다고 한다. 이후 한나라 때 장건(張騫)과 반초(班超) 같은 장수는 서역 정벌 때 군사 통신으로 비둘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또, 당나라 재상 장구령(張九齡)은 천 리 먼 곳에도 비둘기를 날려 소식을 전했다니, 문자 메시지의 원조쯤 되지 않을까. 비둘기를 ‘하늘의 놉’ 곧 비노(飛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양은 물론 고대 이집트나 로마, 아라비아와 유럽 및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비둘기를 이용한 기록과 표본이 있으니, 비노의 활약 무대는 육상과 선상, 동서고금이 따로 없었다. 특히, 동양에선 관상용보다는 통신용·식용 사육이 더 많았던 듯하다. 한반도에서는 18세기 들어 비둘기 사육이 유행했다니 역사가 매우 짧은 편이다.
에어컨 실외기와 난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멧비둘기 내외 때문에 35도가 넘는 불볕더위에도 마음껏 창문을 열지 못했다. 여기저기 날리는 깃털에 꾸꾸룩거리는 소리며, 분별없이 총배설강으로 쏟아내는 분변 냄새는 견디기 쉽지 않다. 참다못한 이웃의 탄원도 걱정해야 한다. 이쯤 되면, 필요한 세대에서는 비둘기 퇴치 그물 설치를 신청하라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안내에 귀를 기울이는 게 상책이다. 그렇다고 예의 모르는 날짐승을 탓할 수는 없는 일.
최근 발행된 통일기원 금메달에 비둘기를 잠상(潛像) 기법으로 새겼다지만, 내 집 창문 앞으로 날아든 놈들은 불편한 이웃일 뿐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눈과 귀만 괴로운 게 아니다. 코와 입도 그들의 활개에 고통받는다. 심지어 소화기계와 호흡기계통은 물론 신경계통의 질병까지도 경계해야 할 판이다. 비둘기 퇴치 업자들도 바빠졌다. 퇴치 그물, 스파이크, 기피제까지 동원해 비둘기를 쫓는다. 성수기엔 1주일은 기다려야 설치해 줄 수 있을 정도란다. 비둘기 퇴치 문의가 지난해보다 30%쯤 늘었다는 업자의 말에서 실상을 알 수 있다.
날로 확장되는 주택단지와 인공으로 조성된 하천 등 새로운 환경이 비둘기들을 불편한 동거자로 불러들이는 건 아닐까.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처럼 1960년대 말이나 지금이나 쫓기는 비둘기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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