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753]대선주자 사자성어/이기환 논설위원/경향신문/201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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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사자성어는 2015년 청와대 시무식에서 역설했다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파부침주(破釜沈舟)’일 것이다. 파부침주는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마저 가라앉힌 채 결사항전하겠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당시 ‘정윤회 문건’을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 아닌 청와대 비서관의 문서유출 사건으로 몰아붙였다. 김 전 실장은 ‘충(忠)은 한자로 쓰면 중심이며,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는 둥 ‘군기가 문란한 군대는 적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둥 ‘다른 마음(異心)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둥 대통령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을 위해 ‘파부침주’를 외친것이다. 그 알량한 사자성어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역사는 백성이 아닌 군주만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자, 그 자를 일컬어 간신이라 한다.
최근 대선주자들도 새해를 맞아 경쟁적으로 기발한 사자성어 발굴에 나섰다.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시간낭비할 필요가 없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사자성어가 있다. 허균의 ‘유민가외(唯民可畏)’이다. ‘천하에 두려운 것은 오로지 백성뿐(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이라 했다. 순자의 ‘주수군민(舟水君民)’은 어떤가.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물은 배를 띄울 수도, 가라앉힐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면 될 것을 뭐하러 머리 싸매고 그 어려운 사자성어를 찾아 헤매는가. 그 시간에 서민들의 삶을 어루만질 대책을 세우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