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649]사라지는 현금/김회평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8.23
상거래에서 돈이 사라져 간다. 지난해 국내 결제 건수에서 신용카드는 39.7%로 현금(36.0%)을 처음 앞질렀다. 이젠 편의점에서500원짜리 껌, 1000원짜리 라이터를 사면서 예사로 카드를 꺼낸다. 여럿이 식사를 하고 각자 카드로 계산하는 모습도 흔하다. 지난2분기 신용카드 결제금액은 평균 3만9973원으로 2004년 통계 작성 후 처음 4만 원을 밑돌았다. 소액결제가 늘면 카드사 부담도 커진다. 결제대행업체에 건당 100∼120원을 지급해야 하지만, 가맹점에서 받은 수수료로는 모자라는 역마진이 발생한다. 편의점에선90%가량이 1만 원 미만의 소액결제다. 카드사들은 5000~1만 원 이하 소액결제에는 신용카드 의무수납제도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은 ‘현금 없는 사회’에 근접해가고 있다. 스웨덴은 모든 상점에서 현금을 받지 않고, 성당·교회의 헌금도 카드로 결제한다. 스웨덴·덴마크·벨기에 등 북유럽 국가의 현금결제율은 10%가 채 안 된다. 프랑스는 1년 전 1000유로 이상 거래 시 현금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중국은 좀 다른 경로다. 신용카드 보급률이 저조한 상황을 ‘알리페이’ 등 모바일 결제로 뛰어넘었다. 중국 도시민의 98%이상이 휴대전화를 물품 구매, 음식 주문, 티켓 예매 등에 활용한다. 국내에서도 최근 1년 새 모바일 결제가 빠른 속도로 신용·체크카드를 대체하고 있다. 지갑이 필요없는 시대를 예고한다.
각국은 화폐 발행을 줄이는 추세다. 한국은행도 우선 ‘동전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해 거스름돈을 구매자의 계좌에 입금하는 시범사업을 곧 시행한다. 외국에선 고액권 폐지론이 나온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500유로를 없애는 방안을 제시했고, 미국에서도 100달러짜리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패·테러의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를 차단하자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초저금리 시대에 자금이 투자에 나서지 않고 초고액권을 통해 숨어버리는 상황을 타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달 5만 원권 발행잔액은 발행 7년 만에 70조 원을 돌파했다. 다른 액면 권은 감소 추세인데 5만 원권만 계속 늘고 있다. 올 상반기 환수율은 50.7%, 시중에 나온 5만 원권의 절반이 잠수를 탔다는 얘기다. 현금 수요가 줄면서 사라지는 돈이 있는가 하면, 거꾸로 수요가 늘면서 사라지는 돈이 있다.